길을 좋아한다.
어릴적 거대한 도량이 만들어내는 곡선이 좋아 장래희망으로 토목기사를 꿈꾸기도 하였고, 높은 산위에서 길게 뻗은 고속도로를 내려다 보며 멍때리는 것도 좋아했다. 그 당시의 오마주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고지식하게 길이란 단어를 내 사진에 새겨넣고도 있다.
이스탄불의 공항 한켠에서 아이유가 참여한 지오디의 '길' 리메이크 클립을 들으며 모닝 맥주를 마시고 있다. 청소년기에는 이렇게 의미 깊은 가사였는지 전혀 몰랐는데, 힘을 빼고 또박또박 부르는 아이유의 파트를 듣고 있자니, 원곡의 가사를 찾아보지 않을 수 없네.
귓속을 채우는 차분한 소리와는 다르게 저편 세상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어. 빠르게 과거의 모습을 찾아가며.
진한 인생의 챕터를 덮으려 하고 있네. 머리속을 스쳐간 수많았던 단상들, 감정의 동요, 깨달음, 그 일할도 기록해 내지 못하였지만 모든 것은 내안에 가라앉아 계속 존재하겠지. 두껍게 덮인 하드커버속 소용돌이 치던 그때의 울림을 잃은채. 다시 펼쳐질 그날을 기다리며. 나를 독려할 그때를.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고 있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 예전의 모습이 돌아올지 모르겠다만, 나에게 선명한 선이 그어졌고 그 이전과 이후로 스스로가 크게 변해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예전의 그 음악을 지금도 듣고 있으나, 소리가 전해주는 의미는 달라졌고 켜켜이 쌓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감정선을 방해한다.
30분 후면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코카서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공항에서 도심까지 이동에 필요한 어플정도. 아는 것도 없고 동선이 긴 빠듯한 일정이지만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손에 쥐고 또 다시 길 위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큰 해방감이 느껴진다. 새로운 것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겠지. 오늘도 라스트콜, 이제 남아있는 에페스를 마저 들이키고 보딩게이트로 발길을 옮겨야 할 시간이다. '22.4.23. 12.46pm 이스탄불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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