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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2013

[중국] Suzhou ('13.4.24. - 5.04.)


[푸동 - 동팡즈먼 - 통진베이 - 후치우산 - 상탕제 - 줘정위안 - 관첸지에 - 진지레이크 - 싱하이스퀘어]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다

육중한 무게에 눌린 진흙밭의 발자국처럼

시작과 끝맺음이 상실된 기억의 방향

줄지어선 느릿한 코끼리의 뒷 모습은

찾으려 해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상당량의 물리적 시간을 보내고서야

비행기 한 귀퉁이에 앉아 펜을 들 수 있었다

오래된 노트의 한 쪽 면엔 작년 가을의 흔적이

고개를 비집고 내밀다 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싫고 좋음에 대한 감정이 어느 시점에

나를 떠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사람들의 입에 인생이라 표현되는

그 어림잡을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밀려

그저 나아갈 뿐이다 better의 의미와는 다르게



조금 이르게 집을 나와 공항 버스를 타고 잠이 들었다


무미건조하게 보딩을 마치고


좁은 비행기에 앉아


공항 서점에서 구입한 롯니를 잠시 뒤적여 보다가는


창에 머리를 기대고 잡을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초점을 풀어 버린다



카메라와 롯니플라닛은 언제나 그렇듯 내 옆을 지키고 있지만

감정의 기복을 잃은 나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싫은게 사라지고 짜증이 늘어간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강물에 흘려보낸 결단은 이제 바다에 닿았을까



식사

한 차례 완벽한 사육의 사이클이 끝나고

밀려오는 피로에 눈을 감는다

익숙하지 않은 짧은 비행

오늘도 역시 아무것도 마무리 짓지 못한다



'13.04.24. pm12:23 푸동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상하이 푸동공항에 내려


일행을 기다리며 주변을 서성이다


공항이 주는 이색적인 정취에 빠져든다


처음으로 찾는 쑤저우는 쉽사리 발길을 허락치 않고


고속도로 한 복판에 차에서 내리게 만들더니


초장에 버릇을 다잡겠다는 심상인지 한참의 시간을 들여


자신의 모습을 드러 내놓았다


금세 날은 어두워지고


기다렸다는듯 도시는 작위적 매력을 뽑내기 시작한다


세련된 스카이라인이며


독일식 하우스 호프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로 무장한 중독성 강한


웨스턴 라이프


모두가 화려함을 쫓는다


당연하듯 기억을 자극하고


편리에 길들여져 간다


이 밤은 뜨겁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길은 늘 침묵 속에 잠긴다


아침이 시작되면


이곳저곳 사람을 조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 위에 사람의 모습이 찾아든다


상점이 열리고


이륜차가 길을 메운다


조금 더 사람 살이에 가까워 지는 느낌이 든다


식사를 하고


걸음을 제촉하며


바삐 각자의 일터를 찾는다


흐르는 강


우뚝 솟은 첨탑


멎은 듯 흐르는 운하를 따라


곳곳에 물길이 닿는다


쓰러지는 듯한 고고한 탑은


저 높은 해의 일주를 몇번이나 지켜봤을까 


사랑아 자라서 올라라


처마 밑에서 내 너를 추억하리라


겉치레는 볕에 말리고


나는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지만


자비의 물은 이어져


손수 내 앞까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사람과 사람을 인도한다


때로는 다가서서 부족한 양해를 구해 보기도 하지만


뒤돌아 서면 다시 선을 긋고


협소한 땅을 자신의 영역으로 한정한다


무엇에 베인 상처가 그리 깊기에


편히 공존하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 되는 것일까


결국 하나로 이어진 물위에서


물 위의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뱃길을 넘어 왔을까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다시 아이가 되는


이 좁은 수로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


도처에 남아 있다


아무리 속도로 뛰어 넘으려 해도


유구한 역사 속 아주 느린 걸음일 뿐


화려하게 채색해 보아도


시대는 저 넘어에서 문을 닫는다


이어지고 싶다


시대를 관통하여


꽃으로서


밥 한 줌 손에 쥐고


좁은 골목을 거닐면 되거늘


도시는 고단함을 감춘다


자신의 위용 아래


사람을 부리며


잘 가꾸어진 정원


어느덧 봄은 찾아와


내 곁에 조용히 앉는다


형용할 수 없는 색으로 눈을 멀게 하지만


무심코 차안과 피안을 잇는 다리를 건너 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봄은 향기를 잃는다




눈을 뜨면 어제의 그 곳에 내가 누워 있다

게운치 못한 수면

이미 머리 속은 지긋하게 돌아 가고 있다

마음의 병이 많은 것을 앗아간 지금

창가에 날아드는 비둘기를 기달리는 소녀는

손을 깨물어 포기의 글씨를 벽에 남기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바람이 불어 온다

잔잔한 유속의 변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삼킬지 모른다

그래도 바람을 좇는다

널 사랑해



호텔 밖으로 보이는 전경


로비에서 바라 보는 전경


화려함 오늘 하루 오케이


모처럼 이르게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 타고


그 중심을 향해


불타는 금요일 나쁘지 않다


차가운 파인트에 맥주 한잔 가득 따라서


음악에 몸을 맡기고 into the groove




어두운 발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포기의 덫에 빠져

달려 온 방향을 깡그리 잊기를 기대하며

나는 무엇이지

고독히 서있는 공중전화 박스에

등을 기대어 주저 앉는다

숨을 가누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이지



하나 둘 커튼 넘어 도시의 불빛이 꺼지고

어둠에 묻히며 입술로 읊조린다

널 사랑해


'13.05.03. pm15:42. 이국의 어느 공장에서





유추가 불가능한 얼굴이 있다

살아 온 곳 가족 관계 학력 빈부격차 속에 놓여진 위치

아무것도 어립잡을 수 없는 얼굴은

내가 그려 놓은 세상의 형태를 기형적으로 늘려 놓는다



나는 점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하는 것 정도의

만족감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곤 포기를 목표로 느릿하게 걷고 있다

이 얼마나 편협한가

문득 인파로 가득찬 비행기에서

극심한 고독감이 찾아 온다



하늘 위에 앉아 있다

지금


'13.05.04. pm14:45 인천공항을 향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