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길지 않은 3년이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잡을 수 없었던, 그래서 다시 좇을 수 밖에 없는 그 시간을 절대적 불변과도 같은 거대한 벽 앞에서 이렇게 돌이켜 본다. 아주 잠시였지만 뜻하지 않게 많이도 늙어 버렸다. 어느 노파가 모든 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공주를 음해하기 위해 하루하루 저주로 응축한 추(醜)로 향하는 약물을 마신 이처럼, 머리카락은 곳곳이 허옇게 세어버렸고, 나의 내면은 추잡으로 가득차 버렸다. 이것이 다는 아니겠지, 뜨거웠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겠지. 믿음과 위안과 방황 속에서 나는 지리하게 생을 이어나갔고 순간순간 찌질했으며 홀로 집안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꾸미기 전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발가 벗겨져버렸네. 카라코람, 훈자 그리고 파키스탄. 내겐 주술적인 그 단어. 언젠가 다시 오래된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녘 판다르를 모두가 웃으며 걸으면 좋겠네. 오늘을 추억하며. 나는 지금도 걸어가고 아직은 한참 힘을 내어야 할 때. 중간에 주저앉거나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가야지. 서두를 것도 누구와 비교할 것도 필요없어. 그것이 나의 방식. 발목을 조여오는 묵직한 등산화를 신고 먼지가 풀풀 올라오는 비포장 도로를 밟아 풍경을 밀어내어 나가네. 그것이 나의 방식. 무엇이 더필요할까. 모든 것은 이리도 충만한데. '19.12.02. 12:25pm 이슬라마바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