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의 행적을 읽을 수는 없지만, 분명 어디에선가 소심한 성격의 에어콘이 자신의 맡은바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식당이다. 호텔 한 켠에 별채로 자리잡은 고급진 일식당. 성미 급한 땀이 목덜미를 타고 주르륵 흘러 내리네. 한방울이 흘러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주르륵 주르륵 이어진다.
아주 잠깐의 거리, 우버를 부를까 하다가 약속시간도 여유가 있고 오랜만에 이렇게 보도 블럭도 깔린, 사람이 정상적으로 보행 할 수 있는 도시에 온 터라, 옛 기억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지. 노트북 가방의 가슴 보조 후크를 걸어 가방을 몸에 밀착시키고 선글라스를 썼어. 해질녁 오후 5시이지만 44도를 나타내고 있는 끓어오르는 두바이의 날씨. 하지만 달아오른 거리에서 선글라스로 자신을 숨기자 마치 마스크를 착용한 히어로물의 주인공 처럼 걸음이 가벼워지고 세상이 다르게 눈에 들어오더라. 알아보는이 없는 낯선 곳에서의 자신만의 변장. 마치 예전의 그때와 같이.
많이 바쁘게 지냈다. 매일같이 침대에 누워서도 노트북을 가슴에 올려 놓은채 잠들곤 했지. 다시 불을 끄지 못하고 잠드는 날의 반복, 작년 6개월간 이곳에 있으며 난 하루도 불을 끄고 잠들지 못했었다. 어둠속에 뭍히면 무엇이든 다시 따라잡지 못할것 같은 괜한 걱정에. 아침 잠이 지독하게도 많은 내가 늘상 새벽에 눈이 떠졌다.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손에 쥐곤 밤새 급하게 전달되었을지도 모르는 메일 리스트를 초조한 마음으로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 이제는 끝일 줄 알았던 그 시절 일상의 반복, 다시, 모든걸 잊고 정신없이 두달을 보냈다.
두바이 공항 근처의 캡틴 밀레니얼 호텔. 르메르디앙, 모두 내가 오래전 기억속에 거쳐 갔던 곳들이네. 이제 이전과는 조금 다른 처지로 이렇게 스쳐 걸어가네. 내 기억 스쳐 지나가듯이. 당시 보다 지쳤고 무기력해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그래도 조금은 더 나아졌겠지. 그렇게 믿고 나아간다. 약속한 지인을 만나기전, 홀로 드레프트 비어를 시켜 놓곤 급한대로 업무 PC를 열어 아주 오랜만에 내게 찾아온 혼자의 시간을 끌적이며 적어 내려간다. 아무런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돌이켜 남기지 않으면, 조만간 미쳐 버려 모든걸 잃을지도 모르니. '19.6.5. 두바이에서..
아빠 많이 외롭겠다. 이곳은 아부다비 공항의 라운지, 보여지는 이들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외노자, 가족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서 홀로 몸부림치는 이들. 모두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을까. 내 삶에서 생존이란 무거운 단어를 빌려야 할 만큼,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끝단을 걸어 나가야만 할 만큼, 나는 그렇게 몰려 왔을까. 감내의 시간이 자신과 모두를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분명할까. 한동안 입을 닫았던 삶에 대한 질문이 다시 혼자가 되자 끊임없이 내 머리속을 어지럽힌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인생이 존재해. 아무리 잘나 봤자 그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의지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해. 나아지고 있다. 믿음이 있다. 그래도 아니 적어도, 가만히 머물러 있지는 않고 조금이라도 걸어 '나아' 가고 있다. 이렇게 자위하지 않으면 나는 더 많은걸 잃게 되겠지. 이렇게 또 오늘 하루가 지나간다. '19.7.20. 가족들을 돌려보내며 아부다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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