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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2014

[티벳] Beijing - Lhasa ('14.8.9. - 8.11.)



북경 서역 - 칭짱열차 - 라싸역 - 바르코트 코라


쩌렁쩌렁 귀를 울리는 익숙하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안내 소리. 바닥에 너저분히 흩뿌린 해바라기씨를 발로 문질러 치우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열차를 기다린다. 등뒤로 밀려나가는 배낭을 쥐어 가며 지친 몸을 기대어 보려 하지만 미약한 안도마저 내게 반복 된 의지를 요한다.

티벳행 열차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대합실은 한족들로 넘쳐 나고, 그 후미진 구석. 무리에서 버려진 힘 잃은 들짐승의 모습으로 그 언제였던가, 이 시발을 그리며 머리 속으로 적어 내려갔던 수많은 구절을 떠올리려 노력해 보지만 내게 고개를 드는 건 잿빛 얼굴로 뒤 돌아 사라지는 상실 뿐이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대도시 능숙한 운전 수들의 솜씨 마냥 한 치 앞에서 요리조리 내 무릎을 비켜 빠져 나아가는 사람들의 캐리어 바퀴를 멀거니 보고 있노라면 치켜 뜨던 내 시선은 사부작 내려가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하려 떠나는 이 여행의 시작이 어느덧 내 곁에 앉아 있는 듯 하다.

 

'14.8.9. 19:05 북경 서역에서 티벳행 열차를 기다리며   

     

 

 

북경 서역 이렇게 은 시작되고


4,064Km 42시간의 칭짱열차를 기다리는 인파 속에서


나는 나를 저 만치 낮추어 내린다


 

게이트가 열리는 안내에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그토록 기다렸던 행선지가 강력한 현실감과 함께 눈앞에 있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Provia




어둠 속에서 잠시 멈춰 선 기차가 다시 우직한 소리를 내며 출발하기 시작한다. 희미하게 켜진 복도 등 아래로 배낭을 맨 객들이 낯설은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며 한 쪽에서 나타났다가 반대로 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북경 서역을 출발한지 두 시간여가 지났고 객실 등은 꺼진 채 창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보름의 빛을 따라 기차는 거대하게 꿈틀거리며 달려 간다. 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 한잔을 마셨고 종이 비누를 써서 고양이 세수를 하곤 내 어깨보다 한 뼘 넓은 침대로 돌아와 헤드랜턴을 켜고 뜨거운 양칫물이 식기를 기다리며 세상과 단절한 채 오지오스본을 듣고 있다.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뉘어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 조차 나질 않는다. 칠팔월에 겨울 자켓을 껴 입고 딱딱한 카메라 가방을 베개 삼아 머리에 벤 채로 왜 이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지 동기를 기억하려 짧은 집중력 주기를 몇 번 이나 반복해 보지만 그것이 어디로부터 내게 찾아 왔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기억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육로가 아닌 칭짱열차에 실린다는 패배감을 표현하기 위해 센티멘탈 해질 때마다 틈틈이 머리 속으로 몇 자 이어지지 못한 문장을 끌쩍거렸다는 행위 자체와 이제는 감상마저 다 증발해 버린 서재에 꽂힌 티벳 관련 서적의 표지 마름질이나 배열 정도 뿐이다.  

 

정말 많은 것을 잃었다.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추스르려 모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한 사막에서 완전한 해체를 기다리는 동물의 사체와도 같이 버려져 버렸다. 아니 놓아 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부끄럽고 속도 상하지만 아직 다시 붙들어 잡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지는 않다. 자본으로 계산된 타협의 순례길.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갖고 풀어 보도록 하자. 길은 아직 4000Km 가 남아있지 않더냐.

 

'14.8.9. 22:53 차갑게 식을 양칫물을 기다리며 

 


눈을 뜨니 기차는 초원을 달리고 있다


식물 한계선 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고원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목동과


고독하게 돌고 있는 발전기만이


 밖을 달래는 전부


SIGMA DP1s 16.6mm 1:4




나는 이 길을 삶과 절단의 의미로 시작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갖기 위하여 그토록 좇았던 것들과는 반대의 의미로 남루한 옷가지에 주먹을 쿡하니 찔러 넣고 대륙 횡단열차에 올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를 저만치 떨쳐 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인 이데아가 지독게 좇아오는 원천적 역마살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현재를 안은 채 원하는 것을 향해 걸어가는 법 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것은 마흔에 다가서는 나이에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도 늘. 그냥 그 자리에서 우매할 뿐이다.

 

'14.8.10. 06:57 잠시 정차한 Zhongwei 역에서



M7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POTRA400


 

모두들 어디론가 바삐 사라지고


단절의 골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들어선다


 

공기가 줄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Xining 을 떠난지 세시간여, 북경을 떠난지 25시간여가 지났고 바깥의 전경은 사막과 목초 지대를 넘어 이제 굽이굽이 심산유곡이 펼쳐진다. 옷가지를 좀 더 끼워 입고 살짝 눈을 붙였다 뜨니 열차는 어느새 어둠 속을 달리고 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휴대폰의 GPS 신호도 잡히지 않고 외부 기압도 알 수도 없어 정확한 측량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악 시계의 고도계가 삼천오백 미터를 가리켰고 순간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쓰러져 잠에 빠져 들었다. 부족한 공기에 복도에서 피어 되는 담배연기까지 섞여 고소인지 머리가 아파 온다. 25시간. 시간은 희박한 공기 속에서도 쉬지 않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본연의 일을 하고 있다. 그 부지런함이 얄미울 정도이다.

이 곳에서는 일상 역시 간단하다. 꾸준히 시간을 밀어내고 생존을 붙들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는 삶. 아침에 일어나 윗 칸에서 건네 주신 과일 한 줌 베어 먹고 설국열차 후미 같은 일반석 열차간을 까치발로 외나무 다리 건너 듯 지나 식당 칸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염두가 나질 않아 잠시 열차가 정차한 틈에 열차 밖으로 뛰어 나와 내 좌석으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 쉬었고 저녁은 조촐하게 침대에 걸터앉아 건조 식품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해결했다. 나머지 시간은 동행 객들과 계속해서 차를 끓여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기차와 시간 역시 각자 그들의 의무사항을 준수하고 있는 듯 열심히 흘러 갔다.

하나의 방향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 많은 인간 군상이 담겨 있다. 선생님, 한의사, 아마추어 고산 등반가, 사진가, 식물학자, 대기업 직원, 엔지니어, 젊은 부부, 도보 여행가, 오누이, 지역 동창생, 건설 사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조금씩 마음 속 담장을 내리며 자신의 꽃을 보이곤 서로 융화되어 간다. 기차의 방향성에 모두가 길들여져 가는 것인가 보다. 오랜만에 귀를 열고 상대의 경험과 학식을 들으며 잊었던 순례의 가치를 되새김질 해본다. 오래된 상처가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 모두 중 하나가 아닌 하나 중 하나라는 자존이 깨어 난다. 이 길을 통해 내가 어떤 기운을 얻어 갈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그들과 나눈 대화는 이 티벳이라는 지정학적 명칭과 함께 오랫동안 내게 남아 있을 것만 같다.

기차는 다시 속력을 내며 고도를 올려 이제 두 시간 후면 거얼무 역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밤 그토록 원하던 티벳으로 들어간다.

 

'14.8.10. 22:09 고요가 찾아온 어두운 객실 헤드랜턴 불빛 아래



 

북적거리는 식당 칸


기차는 이리저리 몸을 틀어 방향을 잡아


고도 적응에 대한 의미없는 확인서 한 장 던져 놓고


머리 속엔 떠난 그리움만 가득하다


태양은 지친 대지를 축복해


호수야


달아


깊어 가는 밤


내 님은 저 아래서 꿈을 꾸고 있겠구나

 

 

다시 날이 밝고


나는 아무런 노력없이 이렇게 티벳 땅에 들어왔네


저 강을 따라


쉽 없이 천장공로를 달리면


설산 넘어


길은 이어지고


터질 듯한 가슴 부둥켜안아 달래면


라싸가 내게 와 있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라싸역에 발을 내딛어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머리 위로 다가 온 하늘을 바라봐


숙소에 짐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바르코트 코라 길을 돌면


꿈에서나 그려 보았던 죠캉사원이 우뚝하게 서있네


룽다의 그늘 아래


성스러운 티벳의 심장을 향해 사지를 낮춰 경건히 절을 올려


도처의 마니차는


쉼 없이 돌고 돌아


무언의 불경을 전하고


승려도


노파도


바람에 실린 불전


도시는 진심만 가득하다


M7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POTRA400


불공 드리는 이들을 뒤로 하고 바르코트 골목길로 들어서면


이 곳에도 생생한 삶이 있다


잠시 쉬어 가도 괜찮아


업보를 덜어 내기 위한 코라는 오늘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바람아 불어다오 모든 허물을 실어 훨훨 날려 버릴 수 있도록

 



 

.M7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POTRA400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Provia

.SIGMA DP1s 16.6mm 1:4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