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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East/2016

[파키스탄] Hunza (Part-3, Landscape)


Karimabad - Eagle's Nest - Hopper Glacier - Aliabad

 

물론 경험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지만, 늘 이곳에 오면 왠지 모르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카라코람 그 거친 길을 걸으며 의지, 욕심, 열망 따위의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욕구가 깨끗이 정화되어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이 커다란 자연 앞에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유한하고 작은지 깨달게 되어서 일까. 사실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아져서 겠지. 아침부터 폼 잡지 말고 무거워지지도 말자.


날짜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많은 것을 필요치 않은 하루. 입안에 커피 향 담고 바람 잘 불어드는 벤취에 앉아 라카포시를 덮고 있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 보며 구름의 속도와 생각의 속도를 동기화 시킨다.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한해가 넘게 같은 레퍼토리를 듣고 있지만 이 곳에 앉으면 여느때와 다르다. 바삐 살며 잊었던 나. 술 한잔 취해 붙잡아보려 애를 써도 대꾸 없이 사라졌던 그 모습이 인기척도 없이 내 옆에 와 앉아 있다. 오늘은 연식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욕심은 아무것도 붙들지 못해. 쫓으려 다가 갈수록 멀어지는 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구. 너는 늘 외로움에만 응답하는 구나. 그냥 고독하게 걸어야 하나 봐. 너를 영원히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공기마저 척박한 땅, 눈으로 뒤덮혀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산, 더 깊숙한 곳으로. 전문미답. 세계의 귀퉁이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정신만 가지고 말이지, 저속 기어를 잡은 생각의 속도, 웅웅되며 시끄럽지만 어쨌거나 반가워. 아직 나를 잊지 않았구나. 내 삶이 걸레가 되더라도 넌 언제곤 찾아와도 돼. 나는 늘 그리고 있으니. 환영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고개를 들자 빗방울이 떨어질 듯 하늘이 어두워져 있다. 며칠째 이어지는 비, 바람은 아직도 찬데, 또 홀로 추운 밤을 보내야 겠구나. 이제 노트를 접고 오늘의 길을 나서야지. 많은 것을 필요치 않는 하루를, 또 쓸게.  '16.04.01. pm12:11 라카포시가 보이는 공원에 앉아



다시 훈자에 들어왔다


울타르 아래로 펼쳐진 카림아바드에는


이 만개해 있네


파란 하늘을 뒤덮는 살구꽃


이곳의 삶은 여전히 그때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구나


눈이 채 가시지 않은 봄날의 훈자에서


나는 풍요를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래 오늘은 주저리 말을 담지 않고


그리웠던 이 곳을 묵묵히 둘러 보네


SIGMA DP1Merrill  19mm 1:2.8  Spring, Hunza District


SIGMA DP1Merrill  19mm 1:2.8  Spring, Hunza District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400TX  Baltit Fort, Hunza District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400TX  Cloud, Hunza District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400TX  Baltit Fort, Hunza District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Ektar100  Mt.Rakaposhi, Hunza District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Way to Mt.Diran, Nagar District


서두를 필요 없어


이미 꽃은 피어 있고


앞서 걸었던 길 그대로 걸으면 돼


SIGMA DP1Merrill  19mm 1:2.8  Way, Hunza District


SIGMA DP1Merrill  19mm 1:2.8  Way, Hunza District


SIGMA DP1Merrill  19mm 1:2.8  Way, Hunza District


SIGMA DP1Merrill  19mm 1:2.8  Hunza River, Hunza District


낯설어 하지마


화려한 꽃에 눈 멀어도


그래도 이곳은 훈자


돌담길 따라 정처없이 걷고


설산 아래 훈자강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아


기억 속 먼 그대 그리워하면 된다네


수억년의 무게 앞에서


나의 외로움 보잘 것 없지만


오늘만은 그냥 그렇게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Portra400  Hasegawa School, Hunza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FujiFilm ProplusII 200  Way to Baltit Fort 


Leica Summicron ASPH 35mm 1:2  Kodak Portra160  Water Channel, Hunza 


스산한 바람에 꽃잎 떨어뜨리는 비가 내리자


거리에 인적 끊기고


모두들 서둘러 돌아가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SIGMA DP1Merrill  19mm 1:2.8  Way to Aliabad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