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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Tour

Local Tour - 지리산 ('14.4.18. - 4.20)


동서울터미널 - 백무동 - 참샘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백무동


고단한 몸을 버스에 뉘여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선다
둘둘말린 커튼으로 습기 가득 먹음은 창을 닦아 보지만
과정을 잃은 현재는 도무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지시로 인해 들어오는 빛과 안내가 나의 자존 보다 높다
일상이란 숙취와도 같은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금요일 자정 백무동행 만석 버스에 오른다



어슴푸레 아침은 찾아오지만



겨우살이 한 가득 숲은 계절도 서두르지 않는다



참샘까지 올라 젖은 옷을 털며 숨을 고르고 있으니



지독한 안개 속 후회로 가득 찬 망령과도 같이 산객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백무동에 내린 시간은 새벽 세시 반 거대한 산의 기운에 모두가 잠들어 있고
헤드랜턴의 영역은 흩날리는 빗방울로 가득 채워진다 산 허리를 휘감은 가스로
빛은 산란되어 한 치 앞의 걸음도 가늠하기 어렵고 정신 마저 몽롱하다
가까스로 마음을 부둥켜 잡고 땀과 빗물을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흠뻑 젖으며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로 짙은 어둠 속을 느릿하게 걸어 올랐다




때론 느리고 때론 급하게 하지만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으며 돌고 도는 계절에 



꽁꽁 얼었던 샘이 흐르고



나무 이끼들이 활력을 찾는다



현수막의 곰이 예년과는 다르게 거칠게 그려진 것이 누군가와 명랑하지 못한 갈등이 있었나 보다



아침이 밝고 발길은 능선을 타기 시작하니



밤새 눈 앞을 가리던 안개가 저만치 아래 깔려 있다



오랜만이네 장터목



짐을 풀어 얼린 막걸리를 녹여 마시며 허기와 피로를 달래본다



대피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길은 다시 천왕봉으로 이어 나간다



운해



죽어서 천년이라는 고목은 이처럼 그림 같은 풍광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다 떠나 보낸 뒤에야 부질없음을 깨달고 



꿈틀거리는 욕망의 산이 얼마만큼 자신을 괴롭혀 왔는지



이제는 초연히 앉아



상실되기 만을 기다리는가



영산 천왕봉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에 쌓인 짐들을 음악에 실어 떠나 보낸다




막걸리 한잔에 살짝 곯아 떨어진 뒤 밀려오는 한기에 눈을 떴다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천왕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민족의 영산 처음도 아니건만 다가갈 수록 가슴이 뛴다
물론 허황 된 기대겠지만 조금이라도 더렵혀진 자신을
이 산이 정화 시켜주길 기대하며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산을 오른다
어머니의 품으로 우리를 받아 주는 곳에
무리에서 쫓겨난 들짐승의 모습으로 내가 있다



새벽 네시에 장터목을 떠나 천왕봉에 올랐을때 그 곳엔 어둠과 거센 바람 뿐 그 어떠한 것도 존재치 않았다



머리 위 하늘의 달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



고요하게 산을 넘는 구름



갖고자 하더라도 잡을 수 없는 것들 뿐



나는 바보처럼 부질 없이 무거운 짐을 등에 메고



아래를 향한 삶을 잊은 채



해망히 산을 내려온다


북적거리는 취사장 한켠에서 털어 넣듯 소주를 들이켜고 밖으로 나와
바람을 등지고 앉아 노트를 손에 든 채 일몰에 맞춰 춤추는 운해를 우두커니 바라본다
유년시절 들었던 발라드 넘버 곡을 이어폰에 걸고 유려한 기타리프에 몸을 맡기니
하루 종일 산마루를 머금고 있던 운해 역시 선율에 맞춰 함께 몸을 움직인다
최후의 향연이었는지 거짓말 처럼 구름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딸깍 거리는 소리도 없이 whitney houston의 i'm every woman으로
음악은 넘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오늘의 하늘은 어둠에 잠겨 간다

'14.04.19. 장터목 대피소 벤치에 앉아 일몰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