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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Tour

Local Tour - 청량산, 도산서원 ('12.06.22. - 06.23.)


입석 - 청량정사 - 자소봉 - 탁필봉 - 연적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청량사 - 도산서원 - 안동호



가야할 길을 마음이 쉽사리 정하지 못했어

길게 늘어진 그림자처럼 어김없이 나를 쫓는 피로가

욕구와 열정을 제어했지



출발시간이 다되어서야 비로소 결정한 목적지

짙은 어둠의 길을 마냥 달렸다

고독하게 이어진 도로 조금의 빛을 얻으려 앞의 차를 따라

아주 먼 기억 속 언저리에 남아있는 심야 DJ의 목소리에 이끌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라이트를 껐다

산이 주는 적막한 밤의 기운을 느끼려 어둠에 닿는 순간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조차 구별할 수 없는 그 순간

내 앞의 고요에 별들이 흘러 간다

천천히 작은 시내가 흘러 가듯



새들의 지져귀는 소리에 눈을 뜨니 하늘이 밝아 오고 있다


전신으로 울어되던 몸을 붙들고 설잠을 청했던 곳


어제의 그 흔적 그대로


조금씩 숲이 깨어나고


피로에 억눌렸던 내 정신도 차차 깨어난다


하룻밤 자리를 허락해 준 자소봉을 뒤로하고


들어 온 그 길을 통하여


다시 길을 걷는다


하나의 봉우리를 넘고


다시 하나의 봉우리를 넘어


뒤를 돌아 보니 벌써 아득하기만 하다


나무에 짙은 글씨로 쓰여진 인생의 기억처럼


어느 나그네 역시 이곳에 기억을 남겼다


걸음이 놀라 잠시 멈추어 선 곳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하늘다리가 이곳에 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리를 건너 뒤를 돌아 보면


내 절경의 가운데 서 있었건만


한치 앞만 보며 사는 무지한 나는 그것도 모른채 많은 것을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이제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놓고


한 숨을 돌리며 정상을 몸소 느껴본다


해가 이만치 오르니 이제 내려갈 시간이구나


산을 내려오며 접어든 청량사 뒷길엔 정성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멋지게 태를 뽐낼 그날을 기다리며


산의 기운을 더해 뜻하는 바를 기원한다


청량산을 병풍처럼 휘감고 앉아 절경으로 불리는 이 곳은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 뿐만 아니라 그 내부도 잘 정돈되어 있다


나비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넉넉함을 지닌 채


그리고 한 켠


정성스레 꾸며진 집 한채가 있다


사람의 발길을 기다리는 곳


언젠가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얼핏 보았던 기억에


마당으로 들어서 보니


주인의 미학이 도처에 있다


봉화의 옛 기억을 더듬어 보며 찻길을 따라 걸어 본다


그리고 오랜만에 도산서원을 찾아


500년의 세월을 지내 온 고목을 다시 만나고


시간을 초월해 마치 멈춘 듯 굽이져 흐르는 낙동강 상류를 가만히 바라본다


한번에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절개가 있다


역사에 홀려서 일까


연꽃의 아름다움이 오늘따라 유독 진하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유유히 내 눈 앞을 지나가는 반딧불이

건강한 산이구나

잘못 찾아오지 않았다는 마치 안도와도 같은

편안함에 산으로 들어 섰다



많은 단상과 감정이 불어오는 바람과 같이

나를 스쳐갔다

조금이라도 붙들어 내 기억에 담고 싶었지만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내 몸은

머리 속 노트북을 열고 자판에 손을 올리는 동시에

그 행위의 상상 조차 포기해 버린다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얼마나 숨을 고르려 멈춰 섰을까

아찔한 어지러움

길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그 아무리 짙은 어둠일 지라도



오늘 이렇게 길을 걷는다

검은 바탕에 원하는 그림을 그리며

기억조차 나지 않는 설레임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