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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2011

[네팔] Pokhara - Ulleri ('11.7.23. - 7.24.)


[트리부완 공항 - 포카라 - 레이크사이드 - 나야뿔 - 울레리]


넘칠 듯 부어 준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공항으로 오면서 수면을 취하겠다는 생각으로 뜬 눈으로 뒤늦은 막판 준비에 열중 했으나 공항버스를 테러 할 듯 떠들어 되는 경상도 부부들 틈에서 잠을 설쳐 오늘의 컨디션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배달 주문해 먹고 너무 잤나 싶으면 눈을 뜨는 일상이 꽤나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내 안의 당김 줄을 모두 풀어 헤쳐 놓은 듯 싶다



출국으로 이어진 길에선 늘 잔잔한 동요가 찾아온다


히말라야 어느 설산에서 발원한 물은 운남으로 흘러들고


나는 그것을 거슬러 네팔로 향한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많은 것들은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거나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간신히 내게 온다는 것을

몇 바퀴 인생의 반복을 통해 배워 왔건만

내 DNA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게으름이

수많은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 내며

나를 이 곳까지 떠밀어 버렸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을

우기를 앞둔 곤충처럼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내 인생은 분명 큰 지각변동의 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향하는 그 거대한 산맥과 같이

많은 단절을 수반할지도 모르지만

그 원론적 틈바구니에 눌려

암모나이트 따위가 될 수는 없다



잡아매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생의 추출을 막고 삶의 기득권을 확보하며

과거와 미래의 이어지는 선상에

나란 존재를 지워지지 않게 각인시켜 줄 것이다



내 인생 다시 쓰려 한다

내가 지금껏 당겨 온 활 시위론

인생의 절반도 날아갈 수 없다

나는 젊고 상당히 모자라며

지독하게도 삶에 대해

욕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깐



오늘

다시 한 번 흐름에 몸을 던진 채

빙그르 한 바퀴 도려 한다

어느 방향이 나오던 그 속에서

내 길을 찾으리


’11.07.23. am 07:10 인천공항 맥도널드에서



먹구름 가득한 트리부완 공항에서 바로 포카라행 비행기로 갈아타니 


30분 남짓한 비행에 소박한 포카라 공항으로 옮겨진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찾은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에서


페와딸 호수는 눈부시게 빛나고


나는 열기를 식힌다



공항은 이른 시간부터 붐볐다

옆 좌석에 앉았던 여행객은

내 덩치가 부담스러웠는지

선잠에서 깨어 보니 자리를 옮기고

어디론가 없어졌다



30분이 지연된 비행의 시작부터

밀려오는 피로에 잠에 빠져 들었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

연속성을 누군가에게 인계해야 하는 것

월급날을 즈음한 각종 공과금의 납부

여러 곳의 부재 전 안부전화

늘 어디로든 떠나기 전 메꿀 일은 많다



어찌보면 나는 어느덧 자라나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미미하지만 아주 조금씩

지구의 공전과도 같이 움직이는

커다란 세상의 한 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미미할지언정

그 자리를 채워 놓는 일은

사회 내 나의 가치만큼의 수고가 따르는 법이다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며 살 수 없다

부딪치고 짊어지지 않으면

영역은 보존 받지 못한다


’11.07.23. am 11:13 비행시간 2시간,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로열게스트 하우스의 아침은


빗소리가 멎으며 시작되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거리를 걸으며


이국에 있는 존재가치가 상실된 자신을 깨달고


고요한 호수에 삶의 무게를 씻어낸다





네 시간 남짓 하늘을 가르니

비행기는 쿤밍 상공을 지나고 있다

곤명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와

차마고도의 매력에 나를 던져

인생의 업을 만든 곳이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도로들이

동부 공업지대를 통과할 때와는 다르게

구불구불 굽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탕구라 산맥과 시가체를 넘어

티벳의 주도 라싸가 나올 것이고

씁슬하지만 중국인들이 닦아 놓은 우정공로를 타면

EBC로 내려오는 National Rd 318을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운명과도 같은 이 길은

지금 내가 가고있는 카트만두와 이어진다

비록 지금은 여러 제약 속에 이렇게 하늘을 건너고 있지만

반드시 언젠가 두 발로 이 곳에 서고 말 것이다


'11.07.23. pm 01:30 황토색의 굽이진 거대한 강줄기를 보며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택시에 올라타 한참을 달리니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세끼 손가락을 들고 피피를 외치며 달려나간 능숙한 운전사는


나를 안나프루나의 초입 마을인 나아뿔로 인도하였다




Black & White 커피숍에 앉아 있다

크루아상과 아메리카노를 기다리고 있는데

제법 알려진 빵집인지 사람들이 들린다



어제의 흐릿한 기억과 함께

여러 산문들이 노트에 적혀 있다

더위와 택시 돌이 씹히는 피자에 관련된

아무 의미없는 글들

이런 마구잡이식 산문은 또 얼마만 인가



어제 점심 카트만두 트리부완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국내선 항공으로 환승해 포카라로 넘어 왔다

마음이 급해 공항에서 환전을 하지 못한 끝내

permit house에서 이문화 체험만 하고

발길을 돌려 로열게스트 하우스에 첫 짐을 풀었다



다음날 트레킹을 위한 포터를 구하고

Lonely 마크가 있는 나폴리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먹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서양 친구들 속에서

조용히 첫 이국의 느낌을 적으려 했으나

피로와 더위에 취기까지 겹쳐

이내 숙소로 돌아와 잠에 빠져 버렸다



아침에 짐을 꾸리고 예약된 사무실에 가니

8시까지 오라던 주인은 아직 가계 문을 열기도 전이었다

뒤늦게 나타난 주인은 permit house가 열지 않았으니

서두르지 말고 어디가서 식사나 하고 오란다



페와딸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이 곳은

인도풍 음악이 흘러 나오는 조용한 빵집이다

이른 시간 페와딸 호수에서 고독히

보트를 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 밝아오며 전날의 어두운 비구름을

밀어내는 하늘의 모습을

호수에서 한가로이 바라보고 싶다



시계를 보니 이제 다시 아침의 여유를 접고

네팔리와 함께 안나프루나의 숲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11.07.24. am 09:26 Black&White coffee shop에서



거대한 잿빛 계곡이 주변의 모든 소리를 잠식하고


곳곳이 산사태로 무너진 길을 천천히 걷는다


거대한 폭포와 농경지의 모습이 계절을 말하고


구름 뒤 설산을 가슴에 그리며


답보하는 인생에서 멀어져 간다


깨끗이 씻겨 내려해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둔채




병든 자의 도시를 벗어나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오니

내 생각 곳곳에

악취가 나는 것이 느껴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사회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인생을 배운다는 것이

무엇이

나를 이리도 내몰았단 말인가



나를 지키기 위한 침묵도

거친 반항도

결국 나를 지켜 내지 못했다


'11.07.24. pm 01:46 Ramghai restaurant에서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은 또 다른 마을로 이어지고




발길이 닿기도 어려울것 같은 산기슭 곳곳까지 뻣어


생명의 범위를 연장한다


울레리의 계단을 아무 생각없이 걸어 오르니


주변의 풍경들이 변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었다

내 몸의 모든 수분이 빠져 나가듯

내 앞의 네팔리 친구는 slow slow를 외치며

내 걸음의 1/5의 속도로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오른다



내가 그에게 짊어지게 한 짐

과연 $12가 타당한가

차라리 나귀에 짐을 실었으면

이처럼 마음 한 켠의 불편은 없었을 터인데



더 이상 흥정을 말자

누가 얼마에 무엇을 했더라에

구속되는 자신이 초라하지 않은가



촉촉이 내리는 비가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마치 악기의 연주와도 같다

울레리에 도착할 즈음하여 내기기 시작한 비는

오늘 저녁을 계속 나와 함께 하려나 보다



벽에 튀어나온 모든 곳에 축축하게 젖은 옷가지을 걸고


그 협소한 공간 속에서 포근한 잠자리를 찾아 하루를 정리한다



아무도 없는 롯지 식당에서

비오는 소리와 발 아래를 가득 메운

물 안개를 보며 이름도 거창한

에베레스트란 맥주를 마신다

손목엔 안티 모스키토 형광 팔지가 채워져 있고

장작 타는 냄새는 비에 젖은 온 마을을 채운다



네팔리 친구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37살에 두 명의 자녀가 있으며 사실 포터가 아닌

가이드 출신이지만 비시즌이라 수입이 없어

포터 일을 한다는 이 친구는 인도며 라다크며

무스탕 및 네팔 전역을 돌며 일을 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여태껏 지었던 무게를 생각하면

내 인생의 무게는 참 보잘 것 없으리라



라다크 이야기 달라이라마 인도와의 관계

네팔리의 숙명과도 같은 가난

종교 구르파 용병 안나프루나 서킷 트레킹까지

다른 이의 견해를 들을 수 있음에 좋다



식사와 맥주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아직 괜찮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니

내 마음의 병

조금이나마 치유 할 수 있을까



문득 산 밑에서 만난 네덜란드 아가씨는

울레리까지 잘 올라 왔을까 궁금해진다

고국의 최고봉보다 7배 높은 곳인데

고산병에 안 걸리기를 바란다

루트가 같다고 하니 언제가 볼 수도 있겠지



빗소리는 거세지고

한 시간 전에 주문한 저녁은

나올 생각을 안한다

달밧 한 번 먹어 보기 힘들다


'11.07.24. pm 7:30 Annapurna View Lodg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