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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2009

[프랑스] Paris - Marseille - Nice ('09.4.16. - 5.2.)



프로방스로 떠나는 오월의 첫째날, 피로에 절어 버린 몸을 이끌고

감겨 오는 눈을 참아 가며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로 향하고 있다

초원을 가득 메운 이름 모를 노란색 꽃으로 하여금

내가 조금씩 태양의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섣부르게나마 느껴 본다 



Lonely Planet, TGV 1st Class, 1664 그리고 Provance




영국을 떠나 프랑스로 온지도 벌써 보름째, 이렇게 TGV 1st class에 앉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마냥 좋게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절과 일방통행으로 얻어낸 자유는

햇볕에 방치된 뚜껑 열린 탄산음료처럼

모두 증발되어 무수한 상념만을 찝지름하게 남겨 놓았다



자욱한 안개 속 피안의 도시 그 짙은 아름다움




6년 전 이 곳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갔을 당시

나는 이유 모를 이 도시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리곤 했다

사람들에게 도시를 표현하며 아름다움과 향수 따위를

실존하는 형상을 대신하여 설명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쩌면 이 곳은 내게 그리움을 가득 먹음은

자욱한 안개 속 피안의 도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존의 영역을 벗어난




그리고 지금 그 자욱한 안개 속에 내가 존재한다

손으로 느껴지는 조각상의 차가움 많은 이방이들



하지만 여전히 실존의 무게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하다는 표현도

City of Light 라는 표현도

'아름답다'라는 하나의 단어를 대신할 수 없다



이 곳에 발을 딛이면 그 섬세함에

그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성스러움에

숨을 쉴 수 조차 없다

아름답다 빠리




그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름다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 남기고 싶은 것이 많았다

고요한 저녁, 텅 빈 호텔방 침대에 쓰러져 팽겨쳐진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수첩을 꺼내어 하루를 적자고, 내 삶을 남기자고

늘상 생각해보지만 한 뼘 모자란 팔의 길이에 몸을 움직이기 귀찮아

피로에 의지를 투항하기 반복이였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의지가 사라진 몸을 이끌고

뼈 속까지 길들여 버린 우리 수출의 역군들 속으로 돌아가

그리운 한국에 신물을 느끼며 자유를 포기한다


'09.5.1. 14:05 아비뇽 TGV 역을 통과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Roissy Millenium Hotel CDG

 

묵직한 기운을 느꼈지 좀 더 잠이 필요했어

하지만 오늘도 새로운 곳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기에

어두운 호텔에 불을 켜고 낡은 욕실로 들어섰지

세면대 위에 걸린 거울 안에는 오래 전 기억 속 내가 찾아왔네

남프랑스의 강한 햇살에 벌겋게 익어버린 얼굴과

젓살 빠진 대학 초년생 마냥 살아난 예년의 실루엣

거칠게 돋아 난 수염을 보며 미소로 인사를 나누어 본다. 



거칠게 돋아 난 수염 오래전 기억 속 나


어제는 쌀쌀한 빠리를 떠나 마르세이로 왔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이 곳이 지중해를 끼고 있는 태양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외투를 벗어 가방에 동여매고 햇살과 이국적 정취를 즐겼지

노트레담 성당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와 도시는 이탈리아를 연상 시켰고

석양이 차오르는 요트 포트를 보며 맥주와 곁들인 지중해 해산물 요리는

나를 그리스로 옮겨 놓았어

그리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려 놓고는

오래된 추억인양 회사를 떠올려 보기도 했어



겉치레를 벗어 던지곤 자연에 사랑을 띄워


Basilique Notre Dame 에서 바라보는 Marseille


내가 찾은 바다를 닮은 고귀한 염원들


이탈리아를 추억하게 만드는 지중해 연안 마을들


Vieux Port와 Provance의 중심 Marseille


햇살과 인적 모두가 사라진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주파하며

호텔로 들어와 기차 타임 테이블과 론니 플래닛을 침대에 올려 놓고

내일을 그리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잠에 빠져 들었지

바로 어제의 이야기이지만

아주 오래 전 꾸었던 꿈같은 느낌이야

현실성이 결여된 행복한 현실이지



석양이 차오르는 Vieux Port 


고갈된 체력을 바다 내음 가득한 지중해 해산물 요리로 달래며


태양이 사라져버린 태양의 도시


 Maresille Luvit


양을 찾아서 오늘도 이렇게


캠핑카와 함께 해안을 끼고 달리는 TGV


하와이가 아닌 Nice


쌀쌀했던 빠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완연한 여름


자갈 투명한 바다 그리고 자유로 가득한 Nice Beach


태양은 피하는 것이 아니야 생을 찾아 주는 것이지 그깟 피부색 던져버려


Mont Boron 에서 내려다 보는 Nice beach 전경


열기가 식지 않는 붉은 지붕의 해안 마을


익사이팅 했던 Nice 구시가의 시장 골목 이방인들로 넘실넘실



카우보이 스타일 낡은 가죽 자켓으로 때 지난 멋을 낸 노인과

예쁜 배꼽을 가진 내 맞은편 언니는 한참을 자리 문제로 실랑이를 버리더만

어느새 두 명의 꼬마 아이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로 바뀌어 있다



역방향 좌석의 뒤로 밀려 가는 풍경을 보며

준비된 미래가 없이 현재와 과거로만 가득 찬

내 인생사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기암들과 오래된 붉은 지붕 건물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을 향하여

근원과 존재를 깊지 않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09.5.2. am 10:30 붉은지붕,기암,해안선,야자수,니스행 기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