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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2015

[스리랑카] Galle - Colombo ('15.9.5. - '15.9.6.)



 Kandy - Cinnamon Red Colombo - Galle Fort - Unawatuna Beach - Colombo



조니워커를 시키는 그 순간, 켄디에서의 일정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였어. 비를 피하러 들어온 레스토랑에서 새우 요리와 맥주를 한껏 먹어 놓고는 또 위스키를 시켜 버렸지. 사실 비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레스토랑도 마음에 들어 그 유명하다던 차라도 한 잔 더하며 이 곳에 조금 더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메뉴를 달라고 했는데, 테이블에 놓여진 내 모바일에서 AOA의 사뿐사뿐 뮤직비디오가 재생되는 것을 웨이터가 너무 진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어서 얼떨결에 메뉴 제일 위에 있는 것을 시켜 버렸지 뭐야. 하여간 비 머금은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오고 조금씩 개어가는 하늘의 모습도 마음에 들어. 언더락스를 흔들며 얼음이 녹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Only one이 플레이 되네.


운 좋게 비상구 앞자리에 앉아 편하게 스리랑카까지 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비행에 곧 바로 이어진 4시간의 이동, 게다가 땡볕에 사자바위까지 올라서인지 몸이 많이 피곤 했나봐. 어제 호텔로 돌아와 맥주 한잔 마시고 스르륵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오늘 아침인거지. 특별히 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야생동물 보호구역 같은 곳에 덩그러니 지어진 호텔에 뭐 특별한 것이 있을것 같지도 않아서 가볍게 호텔 주위를 한 바퀴 걷고서는 조식 대신 칼스버그 한 병과 케슈넛을 손에 쥐었어. 보상심리 같은 것이 있나봐. 파키에서도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서도. 언더락스에 싸구려 워커지만 기분이 무척이나 좋네.


저 멀리서 부터 하늘이 개어오네. 언덕배기에는 거대한 불상과 스투파가 보이고 유럽풍 건물이 호수를 두르고 있네. 무슬림국에서 불교국가로 넘어오니, 물론 종교 탓은 아니겠다만, 내 삶의 퀄러티가 이만배쯤 올라가는 것 같아. '길 위에 선 부동청년'이라 자칭하지만 어제 인도 고아의 기억을 되살리는 여러 길에서 왠지 모르게 신중해 지며 카메라를 들지 않았어. 사진을 한장도 찍지 못했지. 오늘은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3시간을 달려 켄디로 왔는데 날씨는 얄궂고 템플 보단 위스키의 신념으로 이렇게 앉아만 있네. 웃기는 인생이 되었어. 이국행 걸음이건만 아무런 정보도 목적도 없이 출국 4시간 전에서야 꾸역꾸역 짐을 챙기고 이렇게 낯선 땅에서 별다른 흥분감 없이 배회 아닌 배회를 하고 있어.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네. 이게 정상일까.


콜롬보의 일몰을 기대했었는데, 어두워지기 전까지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아. 내일 시간이 있으려나. 

이제 돌아가야지. 늘 그렇듯 후일을 기약하며. 아무런 미련없이. 

그땐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지금과 같지 않기를 꿈꾸며.


'15.9.5. pm.0354  Kandy에서 부동청년.. 



그래도 불심의 나라에 왔는데 사원이라도 하나 제대로 봐야지 하는 마음에 켄디를 찾았으나


날씨 덕택에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다른 형태의 불심을 느끼고 있네


언덕 위의 불상도


아담한 시내도


비 개어 진 보감바라 호수도


모두가 한번 거닐고 싶은 호감 가는 곳이지만


오늘의 죠니 워커 더블샷에 밀려 내 눈에서 가려지네


거친 추월과 과속 역주행 드라이빙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랑카의 천천히 교통 문화는 견딜 수 없더라


카라코람도 아닌 언덕배기 길에서 반나절 이상 흘려 보내고 지친 몸으로 콜롬보의 호텔에 여장을 풀었어


피로에 잠들어 버렸는데 아침이 밝았네 창 밖의 이 드높은 빌딩들을 보라지


인스방파로 묶을 수 없어 이제 방글라데시 마저 두렵게 느껴지네


오늘은 해안을 따라 랑카의 최남단 해변으로 가는 길


쓰나미 추모 불상 앞에 잠시 차를 세우니


내가 그리던 랑카의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Seenigama Muhudu Viharaya


골 포트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 보니


이국적인 유럽풍 건물과


무슬림 학교


기원을 종잡을 수 없는 것 까지


오랜 식민지 역사로 인해서겠지만


바다에 성벽을 쌓고


그 이면에 복잡하게 시간이 엉켜있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Gelle Fort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Gelle Fort


SIGMA DP1Merrill  19mm 1:2.8  Gelle Fort


SIGMA DP1Merrill  19mm 1:2.8  Gelle Fort


SIGMA DP1Merrill  19mm 1:2.8  Gelle Fort


때양볕 아래 해안을 따라 둘러쳐진 성곽을 걷고는


맥주나 한잔 할 겸 마을로 걸음을 옮겨 본다


서남아시아의 끝단 스리랑카가 아닌


지중해 어느 해안 마을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Gelle Fort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Gelle Fort


붉은 지붕과


깔끔한 로터리 그리고 크리켓 그라운드


이렇게 골포트를 기억에 새기며 다시 차에 오른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Unawatuna Beach


야자 나무 넘어 부처가 내려다 보는 해안이라


조금 낯설지만 이 곳은 스리랑카 남단의 어느 해변


난생 처음 접하는 인도양에 발을 담그고 파도의 끝 선을 따라 걸어 본다


SIGMA DP1Merrill  19mm 1:2.8  Unawatuna Beach


이제 짧은 주말 휴가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공항으로 향하던 차를 돌려 잠시 콜롬보를 다시 찾았다


해안을 따라 뻗은 이 철로를 보고 싶었기에


콜롬보의 석양을 보고 싶었기에


끈적한 바다 바람이 불어 오는 이 곳에 섰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Colombo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Colombo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Colombo


이 기차를 타고 해안을 달릴 수 있는 날이 다시 올까


시간에 쫓기지 않고서


창 밖으로 인도양 넘어 사라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단단한 의자에 몸을 깊숙히 기대며


시간을 비켜가는 그날이


짧은 만남 긴 헤어짐 안녕 아대륙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