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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East/2015

[파키스탄] Khunjarab - Passu Glacier - Borith Lake



Khunjarab - Sost - Pasu Glacier - Borith Lake - Hunza - Lahore


눈을 뜨니 버스는 온몸을 떨며 힘겹게 비포장 길을 달리고 있었어. 더 이상 설산은 보이지 않았고 세계의 끝에서 처절하게 싸웠던 잔해들만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지. 짙은 잿빛의 강은 빠른 속도로 흘러 내려 갔고 버스는 그를 좇아 아래로 아래로만 따라가네. 기억속에 남아 있는 지형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져. 불과 보름전의 기억이건만, 책장 맨 아래에 꼽힌 오래된 노트처럼 선뜻 꺼내어 볼 엄두가 나질 않네. 나는 그저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행복했던 시간 뒤로 하고 속절없이 세상으로 돌아가네. - 훈자를 떠나며 나트코 버스 안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마지막 길이다


파수에서 부슬비 내리던 소스트를 지나


쿤자랍 체크포인트를 넘어 선다


쿤자랍 국립공원 입장료인 8달러 값어치를 하려는지 희귀종이라는 눈표범도 보고


여기저기 슬라이딩 쓸린 길에


눈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려 8달러짜리 무리


쿤자랍 정상을 향해 고도를 높이자


또 다른 체크포스트가 나오고


여기서부터는 안전상의 이유로 경찰 한 명을 동승하여 국경을 향해 달린다


불과 일주일 전 카라치에서는 혹서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곳은 설국이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Khunjarab Pakistan-China Border


해발 4,693m의 세상에서 가장 높은 국경 


쿤자랍 정상에 섰다


6월 한여름의 계절이지만 거칠게 눈보라 치는 국경에서


비록 오늘은 갈 수 없지만 언젠가 파미르를 향해 달려 갈 저 너머 중국 땅에 눈길을 보낸다


고생, 아니 축하해 부동청년 또 하나의 꿈을 이루어 내는구나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Khunjarab Pass


돌아온 소스트는 날이 개고 있었다


허름한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고


소스트를 떠나


방향을 돌려 훈자를 향해 다시 KKH에 오른다


비경이란 표현은 너무 완곡할까


여기도


저기도


수 백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들이 끊없이 나타난다


현실이다


파란 하늘 아래 차는 달리고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좀처럼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지만


꿈속이 아닌 현실이 맞다


이 길을 들어 설 때는 문제의 그 길이 되리라 예상치 못했다


SIGMA DP1Merrill  19mm 1:2.8  Passu Glacier


파수 빙하의 추억 그 강한 여운


얼른 가슴에 담고 발걸음을 돌린다


여기는 어딜까


지구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다가도


그 안에 생명이 살아 있고


따뜻함이 전해지면


어디곤 털썩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새로운 세상 사는 법을 가만히 지켜본다


보리스 레이크를 내려 오고


다시 아타아바드 호수에서 배에 올라


길을 돌아간다


안녕 파수


또 다른 안녕 훈자


훈자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떠나는 나를 위해 카라코람의 기억을 공유하는 무리들이 곁에서 밤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지만


한 여름밤의 꿈처럼 동이 터니 난 혼자가 되었고 다시 깊은 침묵에 잠겨


흔들리는 버스에 올라 훈자를 떠난다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어주는 훈자는 End 가 아닌 &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나를 돌아보니, 내 안의 무엇인가 결여된 것이 보이네. 그것은 굳어진 진흙 안에 남겨진 발자국 처럼 점차 소멸되어 어디에서 부터 어디로 걸어 갔는지 방향 조차 알 수 없게 되겠지만, 지금 애잔한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네. 인생 한번 다시 써 보겠다고 모든 것이 충만했던 관성의 시간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와 낯선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많이도 외로웠나 보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란 노래 글귀 처럼 많은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내가 보이더라.


나는 한증막 같이 끓어 오르는 라호르의 방에서 카메라 메모리 카드의 사진을 하나씩 넘겨가며 내 카라코람 여행을 회상했다. 나의 부족한 사진 실력에 실망하기도 하고 또 내 눈으로 직접 보았던 장엄한 광경을 떠올리며 몸서리치게 그리워 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쉬지 않고 이 지구별을 계속해서 돌고 돌겠지만 이런 여정 다시 할 수 있을까. 각자의 궤도에서 고독히 돌고 있는 여러 위성이 한데 뭉쳐 어둠 속에서 얼마나 널 그리워 했노라 말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나는 책상에 앉아 커튼 밖 열기를 더해가는 라호르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어폰 잭을 휴대폰에 깊숙히 밀어 넣으며 책상에 엎드려 Coldplay 의 in my place를 내 기억에 내 여정에 흠뻑 취하도록 반복해서 주입시켜 나아갔다.


In my place, in my place 

Were lines that I couldn't change 

I was lost, oh yeah 


I was lost, I was lost 

Crossed lines I shouldn't have crossed 

I was lost, oh yeah 


Singing Please, please, please 

Come Back and sing to me, to me, me 


Come on and sing it out now, now 

Come on and sing it out to me, me 

Come back and sing 


In my place, in my place 

Were lines that I couldn't change 

I was lost, oh yeah 

Oh yeah 


Coldplay 의 in my place 중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 여행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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