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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dle East/2015

[파키스탄] Rakaposhi Mt. - Eagle's Nest


Rakaposhi Base camp - Eagles Nest - Baltit Fort


훈자에 들어 온 이후, 다들 그러하듯이 특별한 목적 없는 나날을 보냈어. 무리의 한명으로, 먼 땅에서 찾아 온 이방인으로, 편리하게 때에 따라 처지를 바꿔가며 여기저기 휩쓸려 걸었고, 이것저것 훈자의 풍요를 주워 먹다 탈이 나기도 했다. 생리통 약이 남자인 날 살리는 신비를 경험하기도 하면서. 


골든 타임에 한 셔터 누르겠다고 엉덩이 반쪽만한 낚시 의자에 앉아 고개를 쳐들고 저물어 가는 태양을 살피지도, 고어텍스 자켓으로 중무장해 달밤에 산이건 어느집 지붕이건 기어 올라가 삼각대를 세우지도 않았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은 배낭에 넣은 채 세이프 팩으로 칭칭 감아 호텔 한 구석에 던져 놓고 반바지 차림에 구겨 신은 샌들을 끌며 동네를 배회했고, 시간이 나를 넘어 흘러가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눈 앞엔 라카포시, 등 뒤엔 울타르가 거짓말처럼, 아니 특수효과로 철저하게 시각적으로만 재현된 느낌으로 현실감 없이 몇 날 며칠이곤 보란 듯이 서 있더라.


SIGMA DP1Merrill  19mm 1:2.8  Ali Abad

 

이른 새벽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커튼 틈 사이로 미약한 빛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몸을 한번 크게 꼬은 뒤 손을 뻗어 커튼을 젖히자 새벽의 훈자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창밖에 놓여 있었다. 도대체 이 곳에 온지 며칠만에 보게되는 새벽녘이란 말인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아직 어둠에 잠긴 리셉션을 지나 호텔 옥상에 올라가 오랜만에 카메라를 목에 걸어 보았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Rakaposhi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Karimabad


오늘은 라카포시 베이스캠프에 오르는 날


새벽부터 부지런히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Minapin 마을이 저만치 아래에 보인다


구불거리는 흙길을 벗어나니


목초지가 나오고


우리 가이드와 미군 출신의 코쟁이 친구는 한참을 뒤쳐져 따라 온다

 

얼마나 올라 왔을까 저 멀리 빙하지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몇 시간을 걷고 쉬기를 반복하자


찬 바람이 빙하를 타고 불어오며 정상이 눈 앞에 다가왔다


SIGMA DP1Merrill  19mm 1:2.8  Rakaposhi Glacier


장관이다


두개의 빙하가 한 곳에서 만나 거칠게 엉클어지며 흘러 내려간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Rakaposhi Glacier

 

거의 죽어가는 얼굴로 뒤늦게 올라 온 코쟁이 친구는 흡연을 탓하며 쿨해 보이고자 노력했으나 더 이상의 웃음이 따르지 않았고


 

금식기간에 가이드로 나선 라카포시 지역주민 시아파 친구는 올라오는 5시간 동안 this way! 한 번 말하곤 내내 뒤쳐져 올라왔다


나 역시 낭가파르밧 오를 때에 비하면 몸 상태가 많이 올라 왔으나 지치는구나

 

눈 속에 가득한 빙하만이 고통에 대한 위안이다

 

SIGMA DP1Merrill  19mm 1:2.8  Rakaposhi Glacier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Rakaposhi Glacier


늘 그렇지만 하산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이 길을 올라왔나 싶다


잠시 앉아 두번 다시 오지 않을 라카포시의 여운을 느껴 보고는


맨 뒤에서 일행을 따라 훈자로 돌아간다


라카포시에 다녀 온 다음 날 간단하게 하룻밤 묵을 짐을 꾸려 이글 네스트에 올랐다


SIGMA DP1Merrill  19mm 1:2.8  Eagle's Nest

 

SIGMA DP1Merrill  19mm 1:2.8  Eagle's Nest


숙소에 가만히 앉아


움직이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은 곳


SIGMA DP1Merrill  19mm 1:2.8  Eagle's Nest


훈자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신들의 봉우리에 나오는 하세가와가 실존 인물이며 이 곳 울타르에서 삶을 다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의 아내가 이곳에 남편의 이름을 딴 학교를 설립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SIGMA DP1Merrill  19mm 1:2.8  Baltit Fort


좁은 창으로 바라보던 세상은


늘 담에 가려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X-Pro1 FUJINON ASPH SuperEBC 35mm 1:1.4  Ultar Lady Finge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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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0 02:54

    비밀댓글입니다

  • 박성우 2015.07.21 16:17

    캬~ 한편의 시네...
    고생 많았어..
    등산 이거 아무나 못하겠다..

    • BlogIcon 알랭 드 부동 2015.07.22 14:48 신고

      아,,, 제가 벳남으로만 갔어도 이리 고생하며 산타고 이러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다낭 해변에 누워 칵테일 마시며,, 외롭지 않게 보냈겠죠..ㅎㅎ 잘지내시죠? 요즘 한창 바쁠 것 같은데,, 건강 잘 챙기세요 ^^;

  • 김한균 2015.07.22 13:09

    파키스탄이 아닌 외계 어딘가의 지전가로 떠난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드는 사진들 정말 대단하네.. 옛적 꿈들을 하나하나 이루고 있는 나의 옛 동료.. 한때 같이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 BlogIcon 알랭 드 부동 2015.07.22 14:49 신고

      어익쿠! 제게 선배가 자랑스럽죠~ 요즘 정신없이 바쁘실 텐데,,;; 잘 지내고 계시죠? 랩이 그립군요,, 도란도란 커피 마시던 기억이 나네요!!